중국차 산지 분포

분류없음 | 2008/08/09 02:12 | 티웰

중국 4대 차구(茶區)

중국차의 산지 분포범위와 규모는 북위 18~38도, 동경 94~122의 범위 내에 분포하고 있다. 명대에서 청대로 넘어오면서 크게 확장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주로 현재 차가 생산되는 지역마다 차구의 분포와 생산되는 차의 특성이 다르게 나타나므로 크게 네 지역의 차구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으며 명차의 산지는 시대별로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산지와 생산의 변화가 크지 않아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1. 강북차구(江北茶區)

중국의 차생산지로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감숙성(甘肅省) 남부, 섬서성(陝西省) 남부, 호북성(湖北省) 남부, 안휘성(安徽省) 북부, 강소성(江蘇省) 북부, 산동성(山東省) 동남부 등이며, 겨울은 기온이 낮고 여름과 가을은 고온다습하기 때문에 주로 봄에 차가 만들어진다. 관목형(灌木型)의 중엽종과 소엽종이 많다.


강북차구에서 녹차 생산으로 대표적인 안휘성의 차는 경정녹설, 경현제괴, 곽산황아, 구화모봉, 기홍, 노죽대방, 녹모단, 둔록, 용계화청, 육안과편, 육안차, 서성난화, 주매설연, 천주검호, 태평후괴, 황산모봉, 악서취란, 석순취아, 서초괴 등이 생산된다.

[태평후괴]


2. 강남차구(江南茶區)

중국에서 차의 주요한 생산지로서 광동성(廣東省) 북부, 복건성(福建省) 중북부, 호남성(湖南省), 절강성(浙江省), 강서성(강서성), 호북성(湖北省) 남부 등에서 녹차, 홍차, 청차, 백차, 흑차, 화차 다양한 종류의 차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차의 생산량이 전국 총생산량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관목형의 중엽종과 소엽종이 많지만, 소교목형(小喬木型)의 중엽종과 대엽종도 있다.


대표적인 녹차 생산지인 절강성에서 생산되는 차는 강산녹모단, 개화용정, 경산차, 경산향명, 고저자순차, 구갱모첨, 구곡홍매, 금장혜명차, 대불용정, 망해차, 보타불차, 사봉용정, 서호용정, 설수운록, 송양은후, 수창은후, 안길백차, 절홍공부, 화정운무, 안탕모봉, 선거벽록, 천목벽록, 천목청정, 막간황아, 망부은호, 임해반호, 온주황탕, 천강휘백, 천도옥엽, 평수주차, 보타불차, 무양춘우, 월홍공부 등이다.


3. 서남화차(西南花茶)

중구 남서부에 위치하며 가장 오래 전부터 차가 생산되고 있었던 지역이다. 귀주성(貴州省), 중경(重輕), 사천성(四川省), 운남성(雲南省) 중북부, 티베트 자치구 동북부를 포함한다. 기후 조건이 차수(茶樹)의 생장에 적합하기 때문에 차의 종류가 많고 홍차, 녹차, 흑차, 화차가 만들어지고 있다. 관목형과 소목형 외에도 교목형도 재배되고 있다.


4. 화남차구(華南茶區)

열대에서 아열대 기후가 나타나는 곳으로 복건성(福建省) 중남부, 대만(臺灣), 광동성(廣東省) 중남부, 해남(海南), 운남성(雲南省) 남부를 포함한다. 교목형 혹은 소교목형의 대엽종의 차수(茶樹)가 모여있다.


복건성의 대표적인 차로는 대홍포, 무이수선, 반천요, 백모단, 백계관, 백림공부, 백모후, 백호은침, 복건녹아, 본산, 수금귀, 수미, 수선병차, 안계철관음, 안계황금계, 육계, 석정록, 백아기란, 영춘불수, 철라한, 정산소종, 복주말리화차, 수공예말리화차, 용수사, 탄양공부, 정화공부, 모해, 남안석정록, 연심차, 용암사배차, 청산녹차, 칠경당녹차 등이다.


근대에는 제다의 종류도 증가하고 이에 동반하여 복건이나 광동, 대만의 오령차, 안휘의 홍차, 사천이나 운남의 긴압차, 절강, 호남, 호북, 하남, 강소 각 성의 녹차 등과 같이 각 산지의 특색도 명확해진 편이다. 이 가운데는 한 종류의 차만 만들고 있는 곳도 있으며, 안휘성과 같이 녹차, 홍차, 황차 등 몇 종류나 되는 이름 있는 명차를 세상에 내어 놓는 곳도 있다. 이것은 주로 제다의 전통과 기후에 의한 것으로, 즉 환경이 다름에 따라 품종이 달라지기 때문인데 홍차 제조에 적합한 차의 수종(樹種)이 반드시 녹차에도 적합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대엽종과 소엽종 이외의 많은 품종이 판명되고 난 뒤에는 이들 품종의 특징을 살린 차를 생산하게 되었다.


차나무 품종의 분포는 기후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차 산지를 기후에 의해서 구분하기도 한다. 북부 차 산지(온대지역), 중부 차 산지(아열대지역), 남부 차 산지(열대~아열대지역)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북부 차 산지에는 사천의 북부, 섬서의 남부, 호북의 북부, 하남의 남부, 안휘의 북부, 강소, 산동반도 남부의 각 지역이 포함된다. 중부 차산지는 운남의 북부, 사천의 중부와 남부, 귀주(貴州)의 북구, 호북의 남부, 안휘의 남부, 복건의 북부, 호남의 강서, 절강 등의 거대한 지역에 걸쳐있다. 남부 차 산지는 운남의 중부와 남부, 귀주의 남부, 복건의 남부, 광동, 광서와 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기 글은 필자 발행,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에서 보완된 글이다.

 

발행인의 변(辯)

                                                                      발행인 박홍관

 

날씨도 요즘 사람들 마음을 아는지 성큼 동장군(冬將軍)이 먼저 들어와 앉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추운 날이 지나면서도 가끔 마음을 들뜨게 하는 기사들이 있어 그리 춥지만은 않습니다.


근래 예술품(藝術品)에 대해서 관심(觀心)이 높아져 가면서 미술품(美術品)이나 도자기(陶磁器)에 대한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사실은 평범하지만 신선하고 놀라운 일에 들어가는 사건은 자못 흥미를 줍니다. 최근 작가 시기 불명의 산수화가 경매 내정가의 165배를 웃돌며 낙찰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5-17세기의 그림으로 판명되는 이 작품은 어느 컬렉터에게 낙찰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그림에 그러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어느 한편에서는 그 그림 자체가 어떤 특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들것입니다.


하지만 작자도 불명확한 그림에 그 컬렉터는 어떤 확신이 있었길래 그러한 거액을 부르고 소장을 하려 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컬렉터의 판단에 부정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컬렉터에게 그 그림은 분명한 가치를 드러냈고, 무수히 많은 입찰자 가운데서도 그러한 진자를 확인 사람은 단 한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예술품들은 대부분 자신의 출생을 숨기며 살아갑니다. 전쟁이나 사회변혁을 겪으면서 수많은 예술품들은 자신의 본적(本籍)을 잃어버리기 십상이고, 그것을 소장했던 사람들은 명확히 밝혀진 문건(文件)이나 유구히 보관, 소장될 수 없는 지역이나 시설에 남아있게 됩니다. 그 후로 그러한 예술품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이 거리, 저 거리를 나돌기도 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느 외딴 집 벽면이나 장식장 속에서 세월을 지내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러한 예술적 가치가 인정받는 시간적 요건이 갖추어 졌을 때, 온건히 보존된 것은 너무나도 높은 찬사와 드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몸을 덮은 먼지를 떨어내게 됩니다. 이러한 예는 세계 도처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안목(보는 눈)이라는 단어 하나로 광고방송에 엔틱거리에서 도자기를 고르는 여인을 능력있는 사람으로 비유하며 보였겠습니까.


작가의 이름값에 현혹되어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위의 일들과 비교해 본다면) 스스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보편적인 사회적 가치에 의존하는 일입니다. 대신 구입하고 소장하는 사람은 그 이상의 그 이하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은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스스로 판단한 것은 물질적,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게 됩니다. 마치 평생 같이 해 온 저렴한 학생용 만년필을 섣불리 남에게 줄 수 없는 마음, 그리고 아무리 좋은 새 만년필이 생겨도 그 정신적, 시간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분야가 있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와중에 무슨 예술과 미학으로 접근할 시간이 있겠냐고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시간이 있어야 그러한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고 또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에 대한 욕구는 사람마다 정도가 같은 것이어서 일정한 시기가 되면 자연 사람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찾으려 합니다. 문화의 욕구란 높아질 수는 있어도 스스로 낮추기는 어렵습니다. 자질구레한 기초적인 지식은 어떻게 접해도 접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지식이란 그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위에 존재하는 전문적인 지식은 대부분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많습니다. 말이나 그로 표현되지 않는 경험은 기본적인 지식보다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경험적인 지식은 곧 그 사람이 사물을 바라보는 가치의 기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찻잔 하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찻잔 두 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시야가 좁습니다. 그 수량 뿐 만이 아니라 자신의 손을 거쳐가 개수와 사용시간 등이 바로 찻잔에 대한 경험수치를 나타내어 줄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찻잔, 차도구 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도자기 등 여타 사물의 판단에 큰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세인(世人)들은 그러한 경험적 지식을 짧게 안목(眼目)이라는 말로 줄여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안목(眼目)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얻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빠른 시간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물마다 태어나길 기다려야 하고 그것은 손에 놓고 완상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 외에 여러 기물들과 비교, 판단하느 세월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모두 정리하고 다시 구성하는 지혜도 필요하고, 특징과 용도에 맞는 자기만의 시계를 꾸며보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 옛날 어느 벼락 부잣집 서재에서 볼 수 있는 줄맞춘 금빛글자의 명작전집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될 일입니다.


자신 앞에 놓은 작은 찻잔 하나라도 구성과 재질, 그리고 형태와 용도, 더 나아가 내 손에 맞는가, 입술에 닿는 느낌이 어떠하며, 찻물의 온도 전달이 어떠한가하는 하는 촉각적인 문제부터 눈에 아름답게 보이고 유약의 조화로 반짝이는 형상들을 보는 시각적인 문제, 그러한 형식과 형태가 전통적인가 현대적인가를 따져보는 시간적, 역사적인 문제, 작고 큰 정도를 두고 살펴보는 생활과 용도의 문제까지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요건은 무수히 많습니다.
"이름 있는 작가의 작품을 샀다고 해서 그 안목(眼目)까지 샀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경제적 가치의 지불을 통한 소유는 언제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한 거래 후에 기물에 대한 가치평가와 스스로의 식견이 높아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차도구는 스스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텅 빈 시멘트 바닥, 쓸쓸한 공터에 차도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와 어울리는 기물들의 조화가 차문화와 차도구들이 진가를 뿜어 낼 수 있는 환경입니다. 차도구 뿐만 아니라 도자기 문화의 전반적인 관찰도 필요할 것이며 더 예술적으로 넓은 갈래인 글씨와 그림(書畵)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이 결국은 총체적인 안목을 높이는 길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유홍준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덕택에 알려진 말입니다.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라는 어구를 줄인 표현이지만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 면면히 흘러 내려온 안목에 관한 명구(名句)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보아도 20년을 봐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안목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즐기며, 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십수년이 지나 판단할 수 있는 작은 눈이 열리면 바로 그 사람의 안목(眼目)이라 지칭할 뿐입니다.


작은 눈이 겨우 틔여 시장과 진열대의 예술품이 스스로 가치정돈을 하기 시작하면 이 세상 큰 눈을 지닌 분들을 새삼 존경하게 됩니다. 혹여 그러한 분들과의 조우가 이루어진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것도 작은 눈 하나가 틔여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입니다. 이 재미는 내 지갑을 열어 큰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더 큰 세상을 구경하는데 금전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후 보이는 것은 이전과 같지 않더라.
애정(愛情)과 관심(觀心)은 안목(眼目)을 틔우기 위한 최소한의 그리고 최대한의 방법입니다.
이 세상 큰 안목을 가진 분들을 존경합니다.

 

아름다운 차도구

 

                                                          발행인 칼럼 박홍관

 

요즘의 드라마를 보면 전쟁 직후 한국의 어려웠던 생활들이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나라가 갖추어지는 좋은 모습도 보이지만, 그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서로 보듬고 아끼며 살았던 당시의 생활상이다. 살아보려고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을 했던가. 연탄재 가득한 골목길과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망울, 거리를 가득 메우고 옷깃을 여며가며 집으로 줄달음쳐야했던 당시의 삶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벌써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말만 중진국이 아니라 OECD 가입국이라는 위치에 이르렀으며, 그간 서울과 각 도시의 예전 모습들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회문화적 변화들이 늘 도시에 머무르며 사는 사람들에게도 급변()이라는 단어로 다가온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차()라고 하는 고귀()한 문화의 원형()은, 전쟁 직후 그 살기 힘든 세월 속에서도 기어코 싹을 틔우고 나왔고, 언제 우리가 잊었느냐 싶도록 그야말로 왕성한 성장을 거듭해 오고 있다.

 

지난 20년 가까이 차문화의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은 마치 어린 유목이 점점 자라서 큰 아름드리나무가 된 것을 보는 듯하여 넉넉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물론 그 세월 속에 매양 기분 좋은 발전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이 역사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그 동안 차문화의 확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최근 5년간은 지난 20년의 결과에 버금가는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외양과 형식으로는 충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더 중요한 정신문화적 연구에는 아직도 기록에 의지한 답습일 뿐이며, 원전을 통한 기초적인 고전 강독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또한 학술적인 연구에도 이제 박차를 가하고 있어 최근에 들어서는 차문화학()에 대한 전공 과정이 개설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최초로 4년제 정규 대학인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에서 차도구의 이해 학과가 개설되고,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예문화와 다도학과에서 한국차도구문화가 개설된 것은, 앞으로 차도구 분야가 학문적으로 큰 발전을 이룰 토대가 될 것이다. 생물학적인 차의 분석은 이미 대학에서도 꾸준히 진행되어 왔으며 점차 이론적인 틀을 구축하고 새로운 학술적 결과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와 반면에 차문화의 중심에서 한 축을 이룰 수 있는 차도구에 대한 연구, 즉 문화적인 근간이 되는 기물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한 연구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찻잔이야기>와 <사기장이야기>, <차도구의 이해>와 같은 저작물을 출간한 것은 바로 다른 학술적 진도에 발맞추고자 함이다. 역사적으로 유전()되어 왔다고는 하지만 정작 우리의 차도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히 답할 수 없었던 명제에 대하여 시발적()으로나마 그 분야에 대한 존재 가치를 공유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 세월 속에서 필자는 한국, 중국, 일본의 차도구 관련 문화를 20여 년간 지켜보고 연구해 오면서, 한국에도 차도구와 관련한 바른 정보지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차문화계에 올바른 정보지를 낸다는 것은, 보통 규모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충분한 준비가 되기 전에는 섣불리 시작의 움직임도 어려운 일이다. 충분한 자료가 구비되어야 하고, 문화적 학술적 증명을 받은 내용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차문화 정보에 대한 글들을 통틀어 보면 대부분 감상적인 글들이 많다. 물론 그 속에서도 날카로운 비평과 정확한 연구를 통해 발표된 정보와 학술 결과들은 우리의 차문화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큰 은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가 분명한 정보는 아니었으며, 그로 인하여 잘못된 정보로 선입견을 가지게 하는 일도 그에 버금가도록 많았다.


때문에 차문화 정보지라는 것은 정확한 정보를 위한 작은 실수 하나 없을 수는 없겠지만, 후일 차를 마시는 차인으로서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사실들을 정확히 구명()하며 기록하려 한다. <아름다운 차도구>에서 다루어지는 내용 하나 하나가 이 시대의 역사일 수 있으며, 훗날 자료적인 가치를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먼저 <아름다운 차도구>는 차도구 전문지로서 꼭 유명한 사람을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큰 행사에서나 수 있고, 먼발치에서나 뵐 수 있는 저명한 분들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마음 좋은 찻꾼일 수 있다. 문화는 유명 인사 몇몇이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저명한 분들의 참여를 다 막겠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분들의 깊은 말씀 한마디는 수많은 차인()들이 가는 길의 밝은 지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작품에 대한 이해의 정도와 수준을 높이고자 한다. 차문화가 융성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조직과 집단에서의 융성이다. 사무실이나 가정에서의 일상적인 차생활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이니 말이다. 따라서 수준이 높다고 하는 작품들을 어떤 지식과 방법으로 감상하고 판단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백지 상태나 다름없다.


따라서 작품 하나하나에 설명을 붙여서, 왜 귀한 것이며 또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소상히 밝혀보고자 한다. 이러한 일이 일반 기물을 사용하는 일반적 생활에 자칫 소용없는 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차문화의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가 바로 일반인들이수준 높은 작품을 이해하고 또 그것에 대한 인지()를 쌓게 하는 것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일이기에 꼭 필요하다 하겠다.


다음으로는 국내외 차도구 관련 정보와 함께 국제적 트랜드의 방향 제시라고 할 수 있다. 차는 도자기로 된 기물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릇은 수없이 많은 재질과 종류를 가지고 있다. 전통에 국한할 때에는 도자기라는 재질에 제한할 수 있겠지만,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적 활동이 꼭 도자기 재질에만 한정되지는 않는 이유이다.
이러한 내용과 함께 차도구 속에서 작품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함은 유행과 드러난 인물, 기물만을 좇는 기존 차관련 잡지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어느 한 분야, 어느 한쪽의 생활은 호기심을 일으키고 눈길은 유도한다 해도 길게 남지는 않는다. 여운이 길게 남고 읽어서 곧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되는 소식과 글들은, 결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나오기 힘든 법이다.


어떤 곳이든, 어떤 기물에 대한 것이든 필자는 그 모자람을 너무도 확실히 알고 있기에 부지런히 그리고 정성을 다해 찾고, 또 소중한 글들을 엎드려 받고자 한다. 따라서 <아름다운 차도구>는 필자와 같이 좋은 기물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국 곳곳에 숨겨진 훌륭한 차인들의 모습, 차를 즐기고 또 공부하기 위해 알아야 할 고금()의 소중한 지식, 세월 속에 영롱히 빛나는 보물과 같은 차도구의 발견, 그리고 지금 동북아시아에서 나오는 차와 차도구들에 대한 생생한 정보들을 담아 전하고자 한다. 그래서 살아 숨쉬는 차도구 전문지가 되고자 한다.
한 자락의 글이라도 후세에 남을 수 있는 <아름다운 차도구>의 첫발을 내딛는다.
박홍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