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의 변(辯)

                                                                      발행인 박홍관

 

날씨도 요즘 사람들 마음을 아는지 성큼 동장군(冬將軍)이 먼저 들어와 앉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추운 날이 지나면서도 가끔 마음을 들뜨게 하는 기사들이 있어 그리 춥지만은 않습니다.


근래 예술품(藝術品)에 대해서 관심(觀心)이 높아져 가면서 미술품(美術品)이나 도자기(陶磁器)에 대한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사실은 평범하지만 신선하고 놀라운 일에 들어가는 사건은 자못 흥미를 줍니다. 최근 작가 시기 불명의 산수화가 경매 내정가의 165배를 웃돌며 낙찰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5-17세기의 그림으로 판명되는 이 작품은 어느 컬렉터에게 낙찰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그림에 그러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어느 한편에서는 그 그림 자체가 어떤 특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들것입니다.


하지만 작자도 불명확한 그림에 그 컬렉터는 어떤 확신이 있었길래 그러한 거액을 부르고 소장을 하려 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컬렉터의 판단에 부정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컬렉터에게 그 그림은 분명한 가치를 드러냈고, 무수히 많은 입찰자 가운데서도 그러한 진자를 확인 사람은 단 한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예술품들은 대부분 자신의 출생을 숨기며 살아갑니다. 전쟁이나 사회변혁을 겪으면서 수많은 예술품들은 자신의 본적(本籍)을 잃어버리기 십상이고, 그것을 소장했던 사람들은 명확히 밝혀진 문건(文件)이나 유구히 보관, 소장될 수 없는 지역이나 시설에 남아있게 됩니다. 그 후로 그러한 예술품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이 거리, 저 거리를 나돌기도 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느 외딴 집 벽면이나 장식장 속에서 세월을 지내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러한 예술적 가치가 인정받는 시간적 요건이 갖추어 졌을 때, 온건히 보존된 것은 너무나도 높은 찬사와 드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몸을 덮은 먼지를 떨어내게 됩니다. 이러한 예는 세계 도처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안목(보는 눈)이라는 단어 하나로 광고방송에 엔틱거리에서 도자기를 고르는 여인을 능력있는 사람으로 비유하며 보였겠습니까.


작가의 이름값에 현혹되어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위의 일들과 비교해 본다면) 스스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보편적인 사회적 가치에 의존하는 일입니다. 대신 구입하고 소장하는 사람은 그 이상의 그 이하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은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스스로 판단한 것은 물질적,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게 됩니다. 마치 평생 같이 해 온 저렴한 학생용 만년필을 섣불리 남에게 줄 수 없는 마음, 그리고 아무리 좋은 새 만년필이 생겨도 그 정신적, 시간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분야가 있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와중에 무슨 예술과 미학으로 접근할 시간이 있겠냐고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시간이 있어야 그러한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고 또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에 대한 욕구는 사람마다 정도가 같은 것이어서 일정한 시기가 되면 자연 사람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찾으려 합니다. 문화의 욕구란 높아질 수는 있어도 스스로 낮추기는 어렵습니다. 자질구레한 기초적인 지식은 어떻게 접해도 접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지식이란 그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위에 존재하는 전문적인 지식은 대부분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많습니다. 말이나 그로 표현되지 않는 경험은 기본적인 지식보다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경험적인 지식은 곧 그 사람이 사물을 바라보는 가치의 기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찻잔 하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찻잔 두 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시야가 좁습니다. 그 수량 뿐 만이 아니라 자신의 손을 거쳐가 개수와 사용시간 등이 바로 찻잔에 대한 경험수치를 나타내어 줄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찻잔, 차도구 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도자기 등 여타 사물의 판단에 큰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세인(世人)들은 그러한 경험적 지식을 짧게 안목(眼目)이라는 말로 줄여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안목(眼目)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얻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빠른 시간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물마다 태어나길 기다려야 하고 그것은 손에 놓고 완상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 외에 여러 기물들과 비교, 판단하느 세월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모두 정리하고 다시 구성하는 지혜도 필요하고, 특징과 용도에 맞는 자기만의 시계를 꾸며보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 옛날 어느 벼락 부잣집 서재에서 볼 수 있는 줄맞춘 금빛글자의 명작전집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될 일입니다.


자신 앞에 놓은 작은 찻잔 하나라도 구성과 재질, 그리고 형태와 용도, 더 나아가 내 손에 맞는가, 입술에 닿는 느낌이 어떠하며, 찻물의 온도 전달이 어떠한가하는 하는 촉각적인 문제부터 눈에 아름답게 보이고 유약의 조화로 반짝이는 형상들을 보는 시각적인 문제, 그러한 형식과 형태가 전통적인가 현대적인가를 따져보는 시간적, 역사적인 문제, 작고 큰 정도를 두고 살펴보는 생활과 용도의 문제까지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요건은 무수히 많습니다.
"이름 있는 작가의 작품을 샀다고 해서 그 안목(眼目)까지 샀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경제적 가치의 지불을 통한 소유는 언제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한 거래 후에 기물에 대한 가치평가와 스스로의 식견이 높아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차도구는 스스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텅 빈 시멘트 바닥, 쓸쓸한 공터에 차도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와 어울리는 기물들의 조화가 차문화와 차도구들이 진가를 뿜어 낼 수 있는 환경입니다. 차도구 뿐만 아니라 도자기 문화의 전반적인 관찰도 필요할 것이며 더 예술적으로 넓은 갈래인 글씨와 그림(書畵)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이 결국은 총체적인 안목을 높이는 길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유홍준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덕택에 알려진 말입니다.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라는 어구를 줄인 표현이지만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 면면히 흘러 내려온 안목에 관한 명구(名句)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보아도 20년을 봐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안목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즐기며, 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십수년이 지나 판단할 수 있는 작은 눈이 열리면 바로 그 사람의 안목(眼目)이라 지칭할 뿐입니다.


작은 눈이 겨우 틔여 시장과 진열대의 예술품이 스스로 가치정돈을 하기 시작하면 이 세상 큰 눈을 지닌 분들을 새삼 존경하게 됩니다. 혹여 그러한 분들과의 조우가 이루어진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것도 작은 눈 하나가 틔여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입니다. 이 재미는 내 지갑을 열어 큰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더 큰 세상을 구경하는데 금전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후 보이는 것은 이전과 같지 않더라.
애정(愛情)과 관심(觀心)은 안목(眼目)을 틔우기 위한 최소한의 그리고 최대한의 방법입니다.
이 세상 큰 안목을 가진 분들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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