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차도구
발행인 칼럼 박홍관
요즘의 드라마를 보면 전쟁 직후 한국의 어려웠던 생활들이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나라가 갖추어지는 좋은 모습도 보이지만, 그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서로 보듬고 아끼며 살았던 당시의 생활상이다. 살아보려고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을 했던가. 연탄재 가득한 골목길과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망울, 거리를 가득 메우고 옷깃을 여며가며 집으로 줄달음쳐야했던 당시의 삶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벌써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말만 중진국이 아니라 OECD 가입국이라는
위치에 이르렀으며, 그간 서울과 각 도시의 예전 모습들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회문화적 변화들이 늘 도시에 머무르며 사는 사람들에게도 급변()이라는
단어로 다가온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차()라고 하는 고귀()한
문화의 원형()은, 전쟁 직후 그 살기 힘든 세월 속에서도 기어코 싹을
틔우고 나왔고, 언제 우리가 잊었느냐 싶도록 그야말로 왕성한 성장을 거듭해 오고
있다.
지난 20년 가까이 차문화의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은
마치 어린 유목이 점점 자라서 큰 아름드리나무가 된 것을 보는 듯하여
넉넉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물론 그 세월 속에 매양 기분 좋은
발전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이 역사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그 동안 차문화의 확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최근 5년간은 지난 20년의 결과에 버금가는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외양과 형식으로는 충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더 중요한
정신문화적 연구에는 아직도 기록에 의지한 답습일 뿐이며, 원전을 통한 기초적인 고전
강독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또한 학술적인 연구에도 이제 박차를 가하고 있어
최근에 들어서는 차문화학()에 대한 전공 과정이 개설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최초로 4년제
정규 대학인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에서 차도구의 이해 학과가 개설되고,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예문화와
다도학과에서 한국차도구문화가 개설된 것은, 앞으로 차도구 분야가 학문적으로 큰 발전을 이룰
토대가 될 것이다. 생물학적인 차의 분석은 이미 대학에서도 꾸준히 진행되어 왔으며
점차 이론적인 틀을 구축하고 새로운 학술적 결과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와 반면에 차문화의 중심에서 한 축을 이룰 수 있는 차도구에 대한
연구, 즉 문화적인 근간이 되는 기물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한 연구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찻잔이야기>와 <사기장이야기>, <차도구의
이해>와 같은 저작물을 출간한 것은 바로 다른 학술적 진도에 발맞추고자 함이다.
역사적으로 유전()되어 왔다고는 하지만 정작 우리의 차도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히 답할
수 없었던 명제에 대하여 시발적()으로나마 그 분야에 대한 존재 가치를 공유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 세월 속에서 필자는 한국, 중국, 일본의
차도구 관련 문화를 20여 년간 지켜보고 연구해 오면서, 한국에도 차도구와 관련한
바른 정보지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차문화계에 올바른
정보지를 낸다는 것은, 보통 규모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충분한 준비가 되기 전에는 섣불리 시작의 움직임도 어려운 일이다. 충분한 자료가
구비되어야 하고, 문화적 학술적 증명을 받은 내용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차문화 정보에
대한 글들을 통틀어 보면 대부분 감상적인 글들이 많다. 물론 그 속에서도
날카로운 비평과 정확한 연구를 통해 발표된 정보와 학술 결과들은 우리의 차문화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큰 은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가
분명한 정보는 아니었으며, 그로 인하여 잘못된 정보로 선입견을 가지게 하는 일도
그에 버금가도록 많았다.
때문에 차문화 정보지라는 것은 정확한 정보를 위한 작은 실수 하나 없을 수는 없겠지만, 후일 차를 마시는 차인으로서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사실들을 정확히 구명()하며 기록하려 한다. <아름다운 차도구>에서 다루어지는 내용 하나 하나가 이 시대의 역사일 수 있으며, 훗날 자료적인 가치를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먼저 <아름다운 차도구>는 차도구
전문지로서 꼭 유명한 사람을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큰 행사에서나 뵐
수 있고, 먼발치에서나 뵐 수 있는 저명한 분들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마음 좋은 찻꾼일 수 있다. 문화는 유명 인사
몇몇이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저명한 분들의 참여를 다 막겠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분들의 깊은 말씀 한마디는 수많은 차인()들이 가는
길의 밝은 지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작품에
대한 이해의 정도와 수준을 높이고자 한다. 차문화가 융성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조직과
집단에서의 융성이다. 사무실이나 가정에서의 일상적인 차생활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이니 말이다. 따라서
수준이 높다고 하는 작품들을 어떤 지식과 방법으로 감상하고 판단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백지 상태나 다름없다.
따라서 작품 하나하나에 설명을 붙여서,
왜 귀한 것이며 또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소상히 밝혀보고자 한다. 이러한
일이 일반 기물을 사용하는 일반적 생활에 자칫 소용없는 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차문화의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가 바로 일반인들이수준 높은
작품을 이해하고 또 그것에 대한 인지()를 쌓게 하는 것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일이기에 꼭 필요하다 하겠다.
다음으로는 국내외 차도구 관련
정보와 함께 국제적 트랜드의 방향 제시라고 할 수 있다. 차는 꼭
도자기로 된 기물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릇은 수없이 많은 재질과 종류를
가지고 있다. 전통에 국한할 때에는 도자기라는 재질에 제한할 수 있겠지만,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적 활동이 꼭 도자기 재질에만 한정되지는 않는 이유이다.
이러한 내용과 함께 차도구 속에서 작품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함은 유행과 드러난 인물, 기물만을 좇는 기존 차관련 잡지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어느 한 분야, 어느 한쪽의 생활은 호기심을 일으키고 눈길은
유도한다 해도 길게 남지는 않는다. 여운이 길게 남고 읽어서 곧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되는 소식과 글들은, 결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나오기
힘든 법이다.
어떤 곳이든, 어떤 기물에 대한 것이든 필자는
그 모자람을 너무도 확실히 알고 있기에 부지런히 그리고 정성을 다해 찾고,
또 소중한 글들을 엎드려 받고자 한다. 따라서 <아름다운 차도구>는 필자와 같이
좋은 기물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국 곳곳에 숨겨진 훌륭한 차인들의 모습,
차를 즐기고 또 공부하기 위해 알아야 할 고금()의 소중한 지식, 세월
속에 영롱히 빛나는 보물과 같은 차도구의 발견, 그리고 지금 동북아시아에서 나오는
차와 차도구들에 대한 생생한 정보들을 담아 전하고자 한다. 그래서 살아 숨쉬는
차도구 전문지가 되고자 한다.
한 자락의 글이라도 후세에 남을 수 있는
<아름다운 차도구>의 첫발을 내딛는다.
박홍관




